웰메이드 명작 드라마는 아무리 오래 됐다고 해도 한 번씩 생각이 난다. 「풍문으로 들었소」는 나로서는 꽤 드물게 본방 사수까지해가며 따라갔던 작품이었는데 말이다. 오랜만에 생각이 나서 간단히 정리해봤다.
풍문으로 들었소
2015, SBS, 30부작
연출 : 안판석 / 극본 : 정성주
유준상, 유호정, 고아성, 이준 등
「풍문으로 들었소」는 2015년 SBS에서 방영된 블랙코미디 드라마로 제왕적 권력을 누리며 부와 혈통의 세습을 꿈꾸는 대한민국 초일류 상류층의 속물의식을 통렬한 풍자로 꼬집는 내용으로 공식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아내의 자격」, 「밀회」,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봄밤」 등을 감각적으로 연출한 안판석 PD가 연출을 맡았고 「아내의 자격」, 「밀회」 등을 집필한 정성주 작가가 극본을 맡았다.
(*안판석 PD와 정성주 작가는 2000년에 「아줌마」를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남편의 불륜으로 배신당한 전업주부가 이혼 후 그간 잊고 지냈던 자신의 모습을 찾아 씩씩하게 성장해 나가는 내용.)
줄거리
잘나가는 로펌을 운영하는 법조인 가정의 한인상(役.이준)과 평범한 서민 가정의 서봄(役.고아성)은 모두 동갑내기 고등학생으로 우연히 토론 캠프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다. 거기다 서봄은 임신까지 하게 되는데, 이를 알게 된 한인상 부모 한정호(役.유준상),서연희(役.유호정)와 서봄의 부모 서형식(役.장현성),김진애(役.윤복인)는 대립하게 되지만, 우여곡절 끝에 인상과 봄은 부부의 연을 맺고 아이를 낳아 시가에서 함께 살며 키우게 된다.
더군다나 총명한 봄의 가능성을 알게 된 한인상 부모는 봄에게 사법고시를 준비시켜 자신들과 어울리는 로열패밀리로 키우고자 한다.
그러한 한인상 부모의 주도 하에 서봄은 어느덧 그들이 원하던 모습을 갖춰가며 안정적으로 정착하게 된다. 그러나 인상과 봄이 그간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던 진실들과 함께 한인상 부모의 모순을 깨닫고 대립하게 되면서, 더불어 그간 묵묵히 한인상 부모를 보좌해왔던 수행인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일어나면서 한인상 부모가 그토록 연연하고 집착해왔던 품위와 품격에도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감상평
앞서 언급했다시피 방영 당시에 본방 사수를 꼬박꼬박 하면서 봤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만큼 등장하는 인물들이 입체적이고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있어서도 괴리가 없었다. 다소 우스꽝스러울 만큼 품위와 품격에 집착하는 이들의 모습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표현함으로써 그것이 얼마나 모순적이며 궤변에 이르러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다만, 그 때 나는 서봄이 한씨 집안 찜쪄먹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그 곳을 벗어나 친정에 머물며 인상과 함께 자신들만의 미래를 찾아가는 게 조금 아쉽기도 하고 그랬다. 그 곳에 머물면서 목표를 향해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좀 더 먹고선 그것이야말로 모순이기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들이 베푸는 호의와 위선으로 성장해서 그 곳의 꼭대기에 오른 뒤에 그에 반하는 목표를 이룬다 해봐야 그것이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뭐, 그건 그 자체만으로도 그들을 쪽쪽 뽑아먹고 되갚아준다는 점에서 복수의 의미를 가질 수 있겠지만, 서봄이라는 인물이 가지는 야무지고 똑부러지고 정의와 용기를 가진 모습의 결과 어울리지 않으니까. 또, 초반의 서봄이 그랬듯 서서히 물들어서 변질되어 가는 것이 두렵기도 할 거 같고. (그치만 서봄이라는 인물을 이해했다 뿐이지, 취향은 여전히 전자에 가깝다 ㅋㅋ 서봄이 다 찜쪄먹었으면 좋겠어. 아, 난 아직 멀었나 보다.)
한인상 부모를 제외하고 한인상 아버지 한정호 최연희 주변 인물들을 통해서도 이야기가 보여주는 모순은 잘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한정호 로펌에 근무하는 직원들과 최연희 주변의 동창들과 수행인들인데, 직원들 중에서도 한정호의 모순에 적극 협력하는 사람과 그에 반발하는 사람으로 나누어지고 최연희 주변에도 최와 비슷한 동창들과 그에 동조하며 살아가는 듯 하다가 결국 자신들만의 길을 찾아가는 수행인들로 나누어진다. 그러한 과정의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각자 입체적으로 뚜렷하게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가운데서도 어수선하거나 혼란스럽지 않았고 오히려 이야기에 힘이 더해지고 풍부하게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달까. 재밌었다.
한편 이 드라마는 다양한 배우들을 알게 해 준 드라마이기도 하다. 「밀회」에도 많이 등장한 배우진들이라고 하던데, 나는 그걸 안 봤으므로 대부분 이 드라마를 통해 처음 만났다. 길해연, 김권, 장소연, 백지원, 서정연, 윤복인, 공승연, 정가람 등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존재감을 갖고 활약하는 배우들이다. 뿐만 아니라 다들 연기력들이 모두. 연출이나 극본, 배우들의 연기도 다 좋았던, 삼박자가 골고루 잘 맞아떨어지는 드라마였다. 결국 드라마나 영화도 종합예술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고 해야 하나. 어느 하나의 아쉬움을 상쇄시킬 만큼 좋은 매력을 가진 작품들도 물론 많지만.
여전히 한 번씩 생각나는 드라마로, 취향에만 맞다고 한다면 추천하고 싶은 드라마다. 웨이브에는 다 있다.
'드라마 추천 > 한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이유(이지은) 여진구 호텔 델루나 줄거리,감상평 : 넷플릭스 정주행 드라마 추천 (0) | 2025.04.1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