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씨네필/한국영화

이병헌 영화 승부 리뷰(줄거리,관람평) - 스승과 제자의 피할 수 없는 그 순간

독고보배 2025. 4. 20. 19:41

이병헌 주연의 영화 <승부>를 보러 다녀왔다. 주연 배우의 스캔들로 개봉이 무기한 연기된 이후, 넷플릭스 공개 등 여러 방안이 논의되었으나 결국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나게 된, 개봉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영화 <승부>다. 개인적으로는 바둑은 정말 바둑판과 흑돌과 백돌이 있다는 것밖에 모른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예 몰라서 영화에도 그리 관심이 없었는데, 작품 자체도 그렇고 배우의 연기로 워낙 호평받고 있길래 관심이 가서 오랜만에 극장에 다녀와봤다.

 

 

승부

2025, 한국, 115분

이병헌, 유아인, 고창석, 현봉식, 문정희, 김강훈, 조우진 등

감독 김형주

 

줄거리

 

 

세계 바둑대회에서 한국 최초로 우승하며 그야말로 국민영웅으로 잘 나가는 조훈현(役.이병헌)은 어느 날 우연히 맹랑하지만 바둑에 천부적인 자질을 가진 소년 이창호(役.김강훈/유아인)를 만나 제자로 들이게 된다. 그렇게 조훈현의 집에서 지내며 바둑을 배우며 성장하던 이창호는 그러나 조훈현의 제자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번번이 패하기 일쑤다.

 

 

그러던 중 이창호는 조훈현의 라이벌로 손꼽히던 남기철(役.조우진)에게 조훈현에게 배우려고만 하지 말고 이기려고 해 보라는 조언을 받게 되고, 이후 창호는 당장 피하더라도 패하지 않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게 된다. 바둑의 기본에 충실하고 정석적이면서도 공격적인 스타일을 구사하는 조훈현은 처음에는 이런 창호가 마뜩치 않지만 결국 그런 창호를 인정해 준다.

 

그렇게 본인의 스타일을 찾아 조금씩 성장하게 되는 이창호는 마침내 조훈현과의 승부에 놓여지게 되고─ 조훈현은 아주 오랜만에 패배의 쓴맛을 보게 된다. 그 경기 이후, 조훈현은 연거푸 제자에게 쓰라린 패배를 하면서 그간의 모든 타이틀을 빼앗기게 되는데-

 

 

관람평

 

꽤 담백하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영화였다. 어쨌든 아무래도 정적일 수 밖에 없는 바둑이라는 소재가 사용되고, 그런 만큼 영화가 막 스펙타클하고 휘황찬란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지만, 이러한 서사의 분위기에 꽤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 싶다. 받아들이기에 따라 지루하고 단조롭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는 건데, 빠르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나는 요즘 세상에서는 보기 드문 뚝심이다 싶기도 하다.

 

서사 자체도 실화를 충실하게 반영해(물론 각색은 당연히 있고 이를 영화를 시작하기 전에 언급하기도 하지만 인물이나 전체적인 흐름은 충실한 편인 것 같다) 단순한 편이고, 저마다의 색깔이나 캐릭터가 확실한 상태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다. 스승과 제자의 서로에 대한 애정, 그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승부욕과 이를 발판으로 마침내 정점에 서는 제자, 그리고 밀려나는가 싶었던 스승의 재기까지, 기승전결이 잘 정리되고 잘 보여졌다.

 

 

하지만, 여러 디테일에서 조금 아쉬운 부분은 있었다.

 

우선, 이창호의 조훈현을 이기고 싶은 마음을 표현함에 있어서 좀 더 서사나 흐름이 더해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극중 이창호가 표정 변화가 많지 않고 스스로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이긴 하지만, 서사적으로 꼭 필요했던, 정말로 스승인 조훈현을 이기고 싶었던 마음이 서사 내에서 잘 드러났는지는 모르겠다. 어떤 동기부여가 되는 장면이랄 것도 없었고, 남기철의 조언이 역할을 했다기엔 좀 헐겁다 싶다. 그 때 이창호는 그저 좀 더 성장하고 싶었을 뿐이었으니까. 이창호의 캐릭터 자체는 좋았고, 그걸 표현하는 배우의 방식도 좋았지만. 그래서 더 아쉬운 것이다. 어릴 때의 이창호와 성장한 이창호 간의 분위기의 간극도 컸던 것도 아쉽고. 뭐, 어릴 때 자신의 재능을 믿고 의기양양했던 것과 달리 성장하면서 생각만큼의 성장을 하지 못하자 기가 죽고 주눅이 들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기엔 성장한 이창호는 너무 돌부처다.

 

 

조훈현은 제자인 이창호에게 패배하고 난 후 잘 성장한 제자에 대한 자부심과 그 제자에게 패배한 모욕감이 둘 다 잘 드러났더라면 좀 더 입체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이건 단순히 캐릭터에 대한 접근일 뿐이고, 비참함과 서글픔, 어떤 측면에서 봤을 땐 이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감정의 충실한 표현이고 가장 인간적인 장면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참 이중적인 생각이다.

 

그렇게 무너지고 났을 때, 극복하는 과정을 남기철의 조언 형식을 빌린 것도 아쉽다. 이창호에게도, 조훈현에게도 가장 극적이어야 할 순간들을 좀 편리하게 넘어간 느낌이랄까. 스스로 개연성에 너무 집착하나 싶기도 하다.

 

 

배우들의 연기력에 대해서 극찬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병헌이 이병헌했다, 배우가 배우했다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바둑을 잘 모르고(바둑을 모르는 사람도 볼 수 있게끔 용어에 대한 설명도 그렇고 바둑 자체도 너무 복잡하게 풀어가지 않지만, 그래도 바둑을 아예 모르다 보니 그 자체가 진입장벽이기는 했다.), 분위기는 단조롭고, 그래서 충분히 몰입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지만. 음, 정말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떤 묵직함과 뚝심이 느껴지는 것은 좋았지만, 높은 몰입으로까지 발전되지 못했다. 만약 그럴 수 있었다면 배우의 연기가 주는 임팩트가 더 크게 다가왔을 것 같다. 무엇이든 몰입이 동반되어야 한다.

 

덧 : 몇몇 장면에서 어쩔 수 없이 「퀸스 갬빗(The Queen's Gambit)」이나 「미생」이 생각나기도 했다. 체력을 키우자.